이창희 칼럼

이용복과 어머니 날

KAGROPA 0 16,429 2011.04.08 03:46

이용복과 어머니 날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오면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TV나 라디오에서 이용복의 노래가 나오면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혀를 차며 가슴 아파하셨다.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이 드물던 시절 맹인 가수 이용복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당시 우리 어머니는 “청맹관이가 가수가 됐다더라”는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어 아시고 계시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라디오를 타고 들려온 구성진 노래가 어머니의 마음을 건드렸고 그 중에서도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구절에서는 혼절이라도 하시는 것처럼 크게 혀를 차며 “에구 에구 그 에미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에구 애삭스러워라…!”를 연발하셨다.

어머니는 이용복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셨다.

우리는 TV를 보다 이용복이 나오면 얼른 부억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께 알려 드렸다.

어머니는 이용복이 나왔다는 소리에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방에 들어와 이용복의 노래가 끝나고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화면을 주시하셨다.

두툼한 검은 안경.

방송국의 라이트를 반사하는 커다랗고 두툼한 검은 안경에 두둑한 볼이 복스러웠으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흑백 TV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명을 받아 유난히 빛나던 두 뺨과 가지런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노래하고 이야기 하는 이용복의 모습을 처음 보셨을 때 어머니는 “아이고 참 않됐다. 인물도 참 잘났는데 저를 어째…”하시며 연신 혀를 차시면서 친 자식이기나 한 것처럼 가슴아파 하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잡은 이용복은 한 동안 이 프로 저 프로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등 잘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리 막내 동생과 함께 TV를 보게 됐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유쾌한 청백전’으로 기억이 된다.  그 프로그램의 사회자는 당시 너털웃음으로 유명한 변웅전 씨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용복이 중간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가 이용복에게 “이용복 씨는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용복은 “나는 시간이 나면 TV를 봅니다”라고 대답했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 웃음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 막내 동생이 악을 쓰듯 부르짖었다.

“어머, 저건 너무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아무리 각본을 짜고 하는 짓이라도 너무 잔인해 ! 저렇게 말하는 이용복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저 모습을 바라보는 이용복씨 엄마는 얼마나 슬플거야…!”라며 분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보던 나는 막내가 외쳐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렇다.

나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잔인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 막내가 나를 일깨워 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나는 지금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한동안 유명세를 타고 라디오와 TV를 장식하던 가수 이용복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장안을 휩쓸더니 어느날 갑자기 유신의 정화 바람에 사라진 것이다.

당시 유신 정권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퇴폐풍조와 불량하고 저급한 외래 문화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이리저리 칼날을 휘두를 때 이용복씨도 그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출연이 금지됐기 때문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몇 년을 계시던 어머니는 재작년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당신이 묻히실 곳은 미국이 아니라 고향 땅이라는 생각 때문이신지 한국으로 가신 후 줄곧 고향에 계신다.

올해도 또 어머니 날이 다가온다.

어머니 날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이용복이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슴아파 하시면서도 좋아 하시던 가수가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가슴아파 하면서 그리워 해야 하는 날이 가까워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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