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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 터 링 크

 
작성일 : 11-10-05 09:51
Miss Terri
 글쓴이 : 이 창 희
조회 : 3,913  

 

미스 테리는 전형적인 이태리계 백인 여성이다.

퉁퉁한 몸매에 둥근 얼굴도 복실복실하고 선한 눈매가 항상 후덕스러운 인상을 주는 편안한 노부인이다. 5가 지역에 거주한지 40년이 넘는 온리(Olney) 피플 가운데 한 사람이며 턱수염이 멋진 마음씨 좋은 흑인 아저씨와의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다.

이 딸은 혼혈인 자신에 대해 나름대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듯 항상 자랑스러워 한다.

오죽하면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mixed chicken 이라고 정했을까.

그러나 요즘 그 딸의 마음이 몹시 슬프다. 어머니와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언제까지나 옆에 있을 것 같던 미스 테리가 간암 선고를 받고 키모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니 최근 한 두 달 사이에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고 뼈만 남아 가는 형태로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퉁퉁하던 몸이 나날이 앙상하게 말라가도 선한 웃음을 띠고 5가 지역을 활보하며 일주일에 하루 씩은 피자 가게에서 일을 하던 미스 테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미스 테리가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차에 바로 엊그제 미스 테리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이제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칠 것 같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미스 테리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움과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병문안을 가겠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 선한 미소와 씩씩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그리워 하면서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슬픈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들 입을 모으고 있다.

미스 테리는 40년 이상을 온리 지역에 살아서 그런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이 동네에서는 막히고 거침이 없는 여장부이자 동네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한 번은 우리 가게에 손님들이 몹시 붐벼서 서로 자기가 먼저 왔다고, 자기 주문을 먼저 받으라고 하기도 하고 주문한 것이 나오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북새통을 떨자 미스 테리가 있다가 “저 사람이 먼저고 이 사람은 나중”이라고 교통 정리를 해 주자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따르기도 했다고 웨이트리스들이 감탄을 했다.

흑인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나고 두드러지는 하얀 피부의 할머니 미스 테리는 그 피부만큼이나 마음도 하얗고 밝았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 활기차게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씩씩하게 살면서 술을 좋아하는 자기 남편 술을 끊게 만든 여장부이면서 두 명의 손자들을 끔찍이 사랑해서 사람들은 “미스 테리를 보면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손자들 사진을 찍으면 언제나 한 장을 가지고 와서 우리한테 보여 주었던 미스 테리의 사랑을 기록이라도 하듯 우리는 그 사진들을 가게 한 쪽 벽에 붙여 두었다.

그것을 본 다른 손님들도 사진을 가지고 와서 한 쪽 벽면에 사진이 제법 많이 붙어 있었지만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실내 장식을 다시 하면서 그 사진들 대부분 사라지기도 했지만 미스 테리의 손자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미스 테리의 강한 사랑이 사진에 담겨 있어서 어떤 이유로도 함부로 없어지지 못하게 한 것처럼. 자식 사랑하면 우리 한국 사람을 당할 민족이 없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고 들었지만 미스 테리야 말로 한국사람들 못지 않게 남편에 순종하면서 미국식으로 남편을 핸들하고 한국 엄마들처럼 자식을 사랑하면서 미국 엄마들처럼 자녀의 개성과 판단을 존중하고 자녀를 위해서 헌신했다.

한국과 미국의 좋은 점만 모아 놓은 것 같은 미스 테리지만 이제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야 할 시간이 매우 빠르게 다가 오고 있다.

언제나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떠나는 미스 테리의 마음은 어떨까?

그 역시 이승을 떠나고 싶지 않겠지... 무엇보다 남편과 딸과 손자들이 눈에 밟혀서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남아 있는 우리들은 언제나 그 후덕한 모습의 미스 테리를 그리워 하면서 눈시울을 적실 것이다.


 

 


류 인 현 12-01-22 05:33
 
미스 테리의 이야기는 슬프고 아름다우며 우리의 인생 전체를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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